[15편] 조선 왕조의 마지막 기록들: 고종·순종실록의 한계와 실록 전통의 마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엄격한 사관 제도와 정교한 포쇄·보관 시스템을 통해 보존해 온 세계적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시중의 역사서나 블로그 글들을 보다 보면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역시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두 실록은 이전의 실록들과 동일한 역사적 가치와 신뢰성을 가질까요? 조선 왕조 500년 실록 전통의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 두 기록의 진실을 다뤄보겠습니다.
1. 일제강점기 이왕직(李王職) 주도의 편찬 환경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인 1927년부터 1935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기구인 이왕직(李王職)의 주도로 편찬되었습니다.
사관의 독립성 상실: 조선 시대 실록 편찬의 핵심 원칙이었던 '사관의 독점적 기사 작성'과 '왕조차 열람할 수 없는 비밀성'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편찬 사업의 감독권은 일본인 관료들에게 있었고, 사초 대신 일제가 검열하고 가공한 문서들이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총독부의 개입: 편찬 위원회에는 일부 조선인 학자들도 참여했으나, 최종 수정과 검수 과정에서 일본인 학자와 총독부 고위 관료들이 관여하면서 일제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시각이 대거 반영되었습니다.
2. 사료적 왜곡과 식민사관의 침투
편찬 주체가 일제 총독부였던 만큼, 내용 면에서 심각한 왜곡과 폄하가 일어났습니다.
고종과 순종의 비하: 고종 황제는 국권 수호를 위해 노력한 군주가 아닌, 우유부단하고 무능하여 나라를 망친 군주로 묘사되었습니다. 순종 역시 일제의 강점에 순응한 인물로 축소 기재되었습니다.
의병 활동과 항일 운동의 폄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나 전국의 의병 항쟁은 국가를 위한 애국 운동이 아니라 '폭도들의 난동'이나 '치안 교란 행위'로 비하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강제 조약의 정당화: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 등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들이 마치 조선 왕실의 자발적 요청이나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왜곡되었습니다.
3. 국보 및 세계기록유산 제외의 이유
이러한 결정적 한계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와 학계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정통 《조선왕조실록》의 범위에서 엄격히 제외하고 있습니다.
국보 지정 제외: 조선왕조실록(태조~철종)은 국보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나, 고종·순종실록은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당시에도 사관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25대 실록(472년간)만을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4. 한계 속에서도 남아있는 사료적 가치와 교훈
비록 일제의 의도적인 왜곡과 검열을 거쳤지만, 두 실록이 전혀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기초 행정 사료의 보존: 대한제국기 궁중의 일상 기록, 관보, 공식 전교 등 당시의 원본 사료들이 인용되어 있어, 일제의 왜곡 의도를 걸러내고 본래 사료와 비교 검증한다면 당시의 시대상을 복원하는 보조 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록 유산이 주는 역사적 교훈: 기록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 한 국가의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주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제공합니다. 500년간 지켜온 철저한 기록 정신이 나라의 주권 상실과 함께 어떻게 마감되었는지를 증언하는 역사적 산증인인 셈입니다.
📝 핵심 요약
편찬 주체의 한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이왕직 주도로 편찬되어 사관의 독립성과 비밀성이라는 실록의 핵심 가치가 상실되었습니다.
의도적인 내용 왜곡: 고종·순종 황제를 폄하하고 의병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등 식민사관과 일제의 통치 정당화 논리가 반영되었습니다.
정통 실록과의 분리: 사료적 왜곡으로 인해 국보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비판적 검증을 거친 보조 사료로서의 가치는 보유하고 있습니다.
🔮 시리즈를 마치며
이상으로 [1편]부터 [15편]까지 진행된 '한국 고전 문헌 & 조선왕조실록 인문학' 전체 시리즈가 마감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철저한 기록 문화와 인권·법치·외교 시스템을 탐구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생각 나누기
기록의 주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고종·순종실록》의 역사적 교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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